- 필벌주의, 전략주의 그리고 영웅주의
골프 코스의 성격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골프장이 들어가 있는 자연 환경이다. 이는 크게 산, 숲, 바다, 사막으로 나눌 수 있다.
음식으로 치면 한식, 중식, 일식, 양식과 같다. 하지만 같은 산악 지형에 있는 골프장이라고 해도 그 느낌이 전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그 지형을 골프 코스로 전환시키는 디자이너의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한식집이라도 요리사에 따라서 메뉴의 구성과 음식의 맛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골프 코스 디자이너들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다양하다. 티잉 그라운드와 그린의 위치를 선정하는 것부터, 페어웨이의 넓이를 조정하는 것, 러프와 벙커와 나무와 물을 배치하는 것까지 실로 무궁무진한 방식으로 그린과 홀을 골퍼들의 공략으로부터 지켜낸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역할은 홀을 지키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도구의 배치를 통해 공략에 적합한 길을 열어준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들은 한 홀에서 얼마나 많은 공략법을 제공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따라 생각하다 보면 디자인의 성향은 크게 '필벌주의'와 '전략주의', '영웅주의'로 나눌 수 있다.
▲ 당신의 이 홀 전략은?
- 스카이72GC 오션코스 5번(파5, 화이트티 기준 445m)홀, 물을 가로질러 250야드 정도를 치면 투 온이 가능한 거리에 볼을 보낼 수 있다.
필벌주의
필벌주의 코스에서는 디자이너들이 단 하나의 공략 방법을 제시한다. 그런 디자이너의 의도를 따라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골퍼에게 파 기회를 준다.
반대로 디자이너의 의도를 벗어난 플레이를 하면 벌을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파3 아일랜드 홀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경우 디자이너의 의도는 명백하다. 그린 위에 볼을 세워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1m가 벗어나든, 10m가 벗어나든 상관이 없다. 바로 벌타가 부과된다.
필벌주의로 설계된 코스는 그 코스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준다. 스코틀랜드의 일부 골프장은 핸디캡이 일정 수준 이하인 경우에만 입장이 가능하도록 한다. 하지만 그렇게 재미있는 코스가 되지는 못한다.
주어진 길을 따라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공략 방법을 제공하는 전략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전략주의
그랜드슬래머로 유명한 보비 존스가 마스터즈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GC를 건설하면서 디자이너에게 단 한 가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모든 홀은 반드시 두 가지 이상의 공략 방법이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가 다양한 공략 방법을 제시해 준다면 골퍼들은 그 중에 자신의 능력에 맞는 공략 방법을 택하면 된다. 전략주의적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홀은 파5 홀이다.
드라이버와 3번 우드 이후에 피칭 웨지를 잡을 수도 있고, 드라이버와 5번 아이언 이후에 8번 아이언을 잡을 수도 있도록 디자인 하는 것이다. 다양한 수준의 골퍼들이 자신의 능력에 맞게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디자인 경향이다.
영웅주의
영웅주의는 전략주의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공략 방법을 제공한다. 그런데 하나의 길은 위험이 큰 반면 성공할 경우엔 보상도 크게 준다.
페블비치 18번 홀은 넓은 바다를 가로질러서 280야드 이상을 칠 수만 있으면 이글 기회가 온다. 하지만 반대로 바다에 빠져 버리면 벌타를 받는다. 평범한 길이 있고,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영웅의 길을 따라가다 실패하면 벌타를 받게 된다. 그래서 영웅주의는 전략주의와 필벌주의를 합쳐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골퍼들이라면 티 샷을 하기 전에 '이 홀에서 디자이너가 의도한 공략 방법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한 번쯤은 해 볼만하다.
그런 질문만으로도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 보일 수도 있다. 디자이너의 의도를 파악하고, 미리 계획을 가지고 공략하는 골프가 그냥 볼가는 대로 따라가는 골프보다 더 스릴 있는 법이다.
에디터 노수성
박경호 / 그는 샌디에이고 골프아카데미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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